남자의 갱년기?
라는 것이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습니다. 물론 이론적으로는 남성호르몬이 40대 중반 이후로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여성호르몬의 비율이 높아져서 보다 여성적인 감수성이 도드라질 수 있다는 근거는 있습니다.
하지만 설마 그래도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사실입니다.
가만히 돌아봅니다. 저 역시 남자다움이라는 덕목을 꽤나 중요하게 여겼던 축이었더군요. 지나치면 마초일텐데, 마음 한 구석 마초를 혐오하면서도 저 역시도 그런 쪽이었습니다. 하긴 내 안의 어떤 것을 가리기 위해 우리는 누구나 방어기제라고 하는 것을 사용해서 반대로 행동하는 면이 있기는 합니다만....
어쩌면 그런 제 가치관이 남자의 갱년기를 과소평가하게 만든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.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한 무엇을 무시하는 것 말입니다.
얼마 전부터 부쩍 예민해져서 노여움을 잘 타는 저를 발견합니다. 예를 들면, 아이들에게는 맛난 것을 만들어주는 아내가 제게는 남은 음식으로 대충 비벼서 저녁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. 툭하면 외식을 하자는 통에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정성스런 저녁을 준비해서 줘야지 매일 하는 그 놈의 외식을 또 하자고 하면서 짜증을 내곤했습니다. 작은 말, 사소한 행동에도 쉽게 상처받고는 저녁 시간을 썰렁하게 만들곤 했지요. 최근 몇 달 사이에 부쩍 그런 반응이 많아졌습니다.
나름대로는 바깥생활의 피곤함을 이유로, 그런 나를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한 당연한 서운함이라고 항변을 했었습니다. 하지만 어느때라고 바깥 생활이 더 나았던 것은 아닌데... 아내가 특별히 변한 것도 없는데.... 오히려 더 성실하게, 더 열심으로 아이들과 저를 위해 헌신하고 언제보다 더 열심히 살림에 열중인데, 아니 요즘 들어 더욱 살림에 더욱 재미를 붙인 듯 한데....
결국은 제 문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. 나날이 배는 나오고, 나이는 한살 두살 먹어가고, 이뤄놓은 것은 별반 없과, 그런 저런 걱정과 근심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 하는 날이 많아지고, 공연한 몽상에 빠져서는 TV 채널이나 돌리고 있고, 그러면서 아내만 못 살게 군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. 급기야 어느 순간, 이것이 혹 갱년기?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.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.
이 시기를 잘 보내야 할텐데... 근사하게 나이를 먹어야 할텐데... 보기 싫은, 잔소리 많은, 참지 못 하는, 그런 노인으로 변해서는 안 될텐데....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.
약간 서늘해진 날씨에 정신을 조금 차린 듯 하기도 합니다.